사기열전, 소진열전
소진열전(蘇秦列傳): 여섯 나라의 인장을 허리에 찬 사나이
“이 한 몸이 부귀해지니 친척이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천하니 가볍게 여겼다. 하물며 남들이야!” — 소진(蘇秦)
낙양의 빈털터리
소진(蘇秦)은 동주(東周) 낙양(雒陽) 사람이다.
동쪽 제나라에서 배우고, 귀곡선생(鬼谷先生)에게 유세술을 익혔다. 수년을 떠돌다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형제, 형수, 누이, 아내, 첩. 모두 속으로 비웃었다.
“주나라 풍속은 농사짓고 장사해 먹고사는 것이다. 너는 그 본업을 버리고 입만 놀리다 망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
소진이 부끄러웠다. 스스로 한스러웠다.
방에 틀어박혔다. 가진 책을 모두 펼쳐 읽었다.
“선비가 머리를 숙여 글을 배웠는데 그것으로 존귀함을 취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읽은들 무슨 소용인가!”
그러다 주서(周書) 음부(陰符)를 찾아냈다. 엎드려 1년을 읽었다.
일어섰다.
“이것으로 당세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다.”
세 번의 거절
먼저 주(周)나라 현왕(顯王)을 찾아갔다. 측근들이 소진을 이미 알았다. 얕잡아봤다. 믿지 않았다.
서쪽 진(秦)나라로 갔다. 혜왕(惠王)에게 말했다.
“진나라는 사방이 요새로 막혀 있고, 병사와 백성이 많으며, 군사 훈련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천하를 삼키고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혜왕이 말했다.
“깃털이 아직 다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다.”
마침 상앙을 막 처형한 직후였다. 혜왕은 유세객을 싫어했다. 쓰지 않았다.
조(趙)나라로 갔다. 재상 봉양군(奉陽君)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연(燕)나라로 갔다. 1년이 넘어서야 겨우 연문후(燕文侯)를 만났다.
세 번 문전박대. 두 번은 면담도 못 했다.
그러나 소진은 멈추지 않았다.
연나라를 열다
연문후를 만났다. 소진이 말했다.
“연나라의 근심은 천 리 밖 진나라가 아닙니다. 백 리 안의 조나라입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면 구름중·구원을 넘고, 대·상곡을 지나 수천 리를 와야 합니다. 성을 빼앗아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나라는 달랐다.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면 명령을 내린 지 열흘도 안 돼 수십만 군사가 동원(東垣)에 집결합니다. 호타(嘑沱)를 건너고 역수(易水)를 넘으면 나흘이면 도성에 닿습니다.”
천 리 밖 걱정은 무겁게 여기면서 백 리 안 위협은 가볍게 본다. 이것이 가장 잘못된 계산이다.
연나라가 살 길은 조나라와 합종(合從)하는 것이다.
문후가 말했다.
“옳소. 과인의 나라는 작고 조나라와 제나라에 끼어 있소. 선생의 말대로 합종으로 연나라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면, 나라를 들어 따르겠소.”
수레, 말, 금, 비단을 내어 소진을 조나라로 보냈다.
조나라에서 판을 짜다
소진이 조나라에 도착했다. 봉양군은 이미 죽었다.
조숙후(趙肅侯)를 만났다. 소진이 말했다.
지금 천하의 지도를 보면, 제후들의 땅은 진나라의 다섯 배다. 병사는 열 배다.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되어 서쪽으로 진나라를 공격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런데 지금 연횡(連衡)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제후의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자고 한다.
“진나라가 성공하면 그들은 높은 누각에 앉아 음악을 즐기겠지만, 나라는 진나라의 근심에 빠져 있어도 함께 걱정하지 않습니다.”
소진이 구체적인 맹약을 제시했다. 여섯 나라가 환수(洹水)에서 회맹하고 흰 말을 잡아 피로 맹세한다. 어느 나라를 치면 나머지 다섯이 함께 돕는다. 약속을 어기는 나라는 다섯 나라가 함께 친다.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진나라를 고립시키면, 진나라 갑병은 반드시 함곡관 밖으로 나와 동쪽 산동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조왕이 말했다.
“과인은 아직 어리고 나라를 세운 지 오래지 않아 사직의 장기적 계책을 들어본 적이 없소. 이제 선생이 천하를 안정시키려 하시니, 나라를 들어 따르겠소.”
수레 백 대, 황금 천 일(溢), 백옥 백 쌍, 비단 천 필.
소진에게 제후들을 규합할 밑천이 생겼다.
여섯 나라를 돌다
소진이 한(韓)나라 선왕(宣王)을 만났다.
“한나라의 활과 쇠뇌는 천하에서 모두 한나라에서 나옵니다. 병사 한 명이 백 명을 당합니다. 이런 강한 나라의 왕이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긴다면, 이는 사직을 욕되게 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타를 날렸다.
“대왕의 땅은 유한하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유한한 땅으로 끝없는 요구를 거스르는 것, 이것이 바로 원한을 사고 화를 부르는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항문은 되지 말라’ 했습니다.”
한왕이 발끈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며 칼을 짚고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과인이 비록 불초하나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지 않겠소!”
위(魏)나라 양왕(襄王)을 만났다.
월왕 구천은 패잔병 3천으로 부차를 잡았고, 무왕은 병거 300대로 주왕을 쳤다. 지금 위나라 정예 병력이 그것을 훨씬 넘는다. 그럼에도 신하들의 말을 듣고 진나라를 섬기려 한다면, 그 신하들은 모두 간신이다.
“남의 신하가 되어 군주의 땅을 떼어 외교를 꾀하고, 한때의 공을 훔쳐 나중을 돌보지 않으며, 공실을 깨뜨려 사문을 이루는 것, 강한 진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군주를 위협하는 것, 이보다 더 큰 불충은 없습니다.”
위왕이 나라를 들어 따랐다.
제(齊)나라, 초(楚)나라로도 갔다.
제나라 선왕(宣王)에게는 진나라가 아무리 쳐들어오려 해도 험준한 지형 탓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초나라 위왕(威王)에게는 말했다.
“합종하면 제후들이 땅을 떼어 초나라를 섬기고, 연횡하면 초나라가 땅을 떼어 진나라를 섬깁니다. 이 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대왕께서 살펴보십시오.”
초왕이 말했다.
“과인은 밥을 먹어도 달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도 편하지 않았소. 마음이 흔들흔들 매달린 깃발처럼 어디에도 붙지 못했소. 이제 선생이 천하를 하나로 묶으려 하니, 삼가 사직을 받들어 따르겠소.”
여섯 나라의 인장
여섯 나라가 합종(合從)했다.
소진이 합종의 맹주가 되었다.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했다.
북쪽으로 조나라에 복명하러 돌아가는 길에 낙양을 지났다.
수레와 기마, 짐수레의 행렬. 제후들이 각각 사신을 보내 전송했다. 왕자(王者)에 버금가는 위세였다.
주나라 현왕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며 길을 치우고 교외까지 나와 위로했다.
소진의 형제, 형수, 아내, 첩. 모두 곁눈질조차 못 하고 고개를 숙여 음식을 날랐다.
소진이 형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찌 전에는 그리 거만하더니 지금은 이리도 공손하오?”
형수가 엎드려 땅에 얼굴을 대고 사죄했다.
“계자(季子)의 지위가 높고 금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탄식했다.
“이 한 몸이 부귀해지니 친척이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천하니 가볍게 여겼다. 하물며 남들이야! 만약 내게 낙양 성 밖 두 이랑의 밭이라도 있었다면, 내 어찌 여섯 나라의 재상 인장을 허리에 찰 수 있었겠는가!”
가난이 그를 만들었다.
천금을 풀어 종족과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예전에 연나라로 갈 때 백 전(錢)을 빌렸던 사람에게 백 금(金)으로 갚았다. 신세진 모든 이에게 보답했다.
단 한 사람, 아직 보답받지 못한 자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소진이 말했다.
“내가 잊은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함께 연나라로 가다가 역수(易水) 가에서 두세 번이나 떠나려 했소. 그때 나는 곤궁했고, 그대에게 거는 기대가 컸기에 그 원망도 깊었소. 그래서 마지막까지 미루었던 것이오. 이제 그대도 받을 것이오.”
합종이 흔들리다
소진이 여섯 나라와의 합종 약서를 진나라에 던졌다.
진나라 병력은 15년 동안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진나라가 가만있지 않았다.
서수(犀首)를 보내 제나라와 위나라를 꾀어 함께 조나라를 치게 했다. 합종을 깨뜨리려는 것이었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쳤다. 조왕이 소진을 꾸짖었다.
소진이 두려워하며 청했다.
“연나라로 가게 해주십시오. 반드시 제나라에 보복하겠습니다.”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자 합종이 모두 풀렸다.
첩과 이중첩자
연나라에 돌아왔다.
연역왕(燕易王)의 어머니, 즉 문후의 부인과 소진이 사통(私通)했다.
연왕이 알았다. 그러나 오히려 소진을 더 후하게 대우했다.
소진이 두려워했다. 연왕을 설득했다.
“제가 연나라에 있으면 연나라를 무겁게 하지 못하지만, 제나라에 있으면 연나라가 반드시 무거워질 것입니다.”
연왕이 말했다.
“선생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시오.”
소진은 일부러 연나라에서 죄를 지은 척하고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선왕(齊宣王)이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제나라를 안에서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제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했다. 소진이 민왕에게 말했다. 후한 장례를 치러 효심을 드러내라. 높은 궁궐, 넓은 동산을 지어 뜻을 이뤘음을 보여라.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어 연나라를 위하는 계책이었다.
그러는 사이 제나라 대부들 중에 소진과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았다. 누군가 소진을 찔렀다. 죽지 않았으나 치명상을 입고 달아났다.
제왕이 범인을 추적했으나 잡지 못했다.
소진이 죽어가며 제왕에게 말했다.
“제가 죽으면 저를 거열(車裂)하여 저잣거리에 돌리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난을 일으켰다.’ 그렇게 하면 제 원수가 반드시 스스로 나타날 것입니다.”
왕이 그대로 했다.
소진을 죽인 자가 과연 스스로 나섰다. 제왕이 그를 처형했다.
연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심하도다, 제나라가 소 선생의 원수를 갚아줬구나!”
형제들이 이어받다
소진이 죽고 사정이 크게 드러났다.
제나라는 뒤늦게 진실을 알고 연나라를 원망했다.
소진의 동생 소대(蘇代)와 소려(蘇厲)가 있었다. 형의 성공을 보고 함께 유세술을 배웠다. 소진이 죽자 소대가 연왕을 찾아갔다. 형의 방식을 이으려 했다.
소대는 제나라의 허점을 분석했다.
“오랫동안 전쟁을 치른 나라는 백성이 지쳐 있고, 병사는 쇠약해져 있습니다. 지금 제나라가 바로 그렇습니다. 군주는 탐욕스럽고 백성의 힘은 다했으니, 취할 수 있습니다.”
연나라가 결국 제나라를 쳤다. 제나라 민왕이 달아났다.
소대의 마지막 경고
오랜 뒤, 진나라가 연왕을 불렀다.
연왕이 가려 하자 소대가 말렸다.
진나라의 방식은 이렇다. 초나라에는 촉(蜀)의 군사로 위협한다. 한나라에는 이틀 만에 도성에 닿겠다고 선언한다. 위나라에는 물길을 터서 대량(大梁)을 수몰시키겠다고 협박한다. 그리고 그 땅을 얻고 나면, 약속한 것들을 죄다 뒤집는다.
“진나라가 천하를 취하는 것은 의리가 아닙니다. 폭력입니다. 용도에 따라 각 나라에 다른 말을 하고, 쓸 때 쓰고 버릴 때 버립니다.”
진나라의 약속을 믿는 것은 독을 먹으면서 배를 채우려는 것과 같다.
연소왕이 듣고 가지 않았다.
소대는 연나라에서 다시 중용됐다.
사마천이 남긴 말
태사공이 말했다.
소진 형제 셋은 모두 제후를 유세하여 이름을 드러냈다. 그 술(術)은 권변(權變)에 뛰어났다.
소진은 이중 첩자로 의심받아 죽었고, 천하가 그를 비웃었다. 그의 술을 배우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세상에서 소진에 대한 말이 많이 어긋나는 것은, 다른 때의 일들 중 비슷한 것들이 모두 소진에게 갖다 붙여졌기 때문이다.
소진은 평민에서 일어나 여섯 나라의 합종을 이루었다. 이는 그 지혜가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행적을 기록하고 시간 순서를 정리하여, 소진이 홀로 나쁜 이름을 뒤집어쓰지 않게 하고자 한다.”
가난이 없었다면 여섯 나라도 없었다
소진의 출발점을 기억해야 한다. 형수의 비웃음, 가족의 냉대, 세 번의 거절.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평생 낙양의 작은 밭이나 일궜을 것이다.
실패의 치욕이 클수록, 그것을 버티고 돌아선 자의 집중력은 다르다.
소진은 제후들을 설득할 때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먼저 짚었다. 연나라에는 조나라, 한나라에는 진나라의 끝없는 요구, 초나라에는 두 방향 협공. 두려움을 정확히 짚은 뒤 그 해법으로 자신을 제시했다.
설득은 내 논리가 아니라 상대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소진의 최후는 서늘하다. 연왕의 어머니와 사통하고, 제나라에 이중 첩자로 들어가고,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암살자를 잡는 계책을 짰다. 끝까지 판을 설계했다.
그 치밀함이 그를 살렸고, 그 치밀함이 그를 죽였다.
너무 많은 판을 동시에 짜는 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어느 판 위에 서 있는지 잃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