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상군열전
상군열전(商君列傳): 법으로 나라를 세우고 법에 밟혀 죽은 자
“상군은 천성이 각박한 사람이다. 그가 진나라에서 악명을 얻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 사마천, 사기(史記)
버려진 천재
위(衛)나라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이름은 공손앙(公孫鞅). 훗날 상앙(商鞅)이라 불리게 될 이 사나이는 어릴 때부터 형명학(刑名學), 즉 법과 제도의 학문에 빠져 살았다.
위나라 재상 공숙좌(公叔座)의 밑에서 중서자(中庶子)로 일했다. 공숙좌는 그의 재능을 알았다. 그러나 왕에게 추천하기 전에 병이 들었다.
위혜왕이 문병을 왔다. 공숙좌가 말했다.
“제 중서자 공손앙은 비록 젊지만 기이한 재주가 있습니다. 나라를 맡겨 들으시기 바랍니다.”
왕이 침묵했다.
공숙좌가 왕을 배웅하고 사람을 물린 뒤 말했다.
“왕이 쓰지 않으려거든 반드시 죽이십시오. 국경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왕이 허락하고 떠났다.
공숙좌가 공손앙을 불러 말했다.
“오늘 왕에게 너를 추천했으나 안색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임금을 먼저 생각하는 신하이기에, 쓰지 않으려거든 죽이라고 했다. 왕이 허락했으니 빨리 도망쳐라.”
공손앙이 태연히 말했다.
“왕이 당신의 말을 듣고 저를 쓰지 않으려 했다면, 어찌 당신의 말을 듣고 저를 죽이겠습니까.”
그는 떠나지 않았다.
혜왕이 돌아가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숙좌의 병이 심한 것인가. 나에게 나라를 공손앙에게 맡기라 하니, 어찌 황당하지 않은가!”
천재는 이렇게 버려졌다. 위나라에서.
세 번의 설득
공숙좌가 죽고, 공손앙이 소식을 들었다.
진(秦)나라 효공(孝公)이 천하에 현자를 구한다는 포고를 내렸다. 목공(繆公)의 업을 계승하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공손앙이 서쪽으로 향했다.
효공의 총신 경감(景監)을 통해 접견을 청했다.
첫 번째 만남. 공손앙은 제왕의 도(帝道)를 논했다. 효공이 졸았다. 접견이 끝나자 효공이 경감에게 화를 냈다.
“네 손님은 망상가다. 쓸 수 없다.”
공손앙이 말했다.
“제가 제도(帝道)로 설득했는데, 그 뜻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만남. 왕도(王道)를 논했다.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남.
이번엔 달랐다. 패도(霸道), 즉 강국을 만드는 현실적 방법을 꺼냈다.
효공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며칠을 이야기해도 지치지 않았다.
경감이 물었다.
“어떻게 우리 군주의 마음을 움직였소?”
공손앙이 답했다.
“제왕의 도는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군주께서는 지금 당장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강국의 술(術)로 설득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법이 내려오다
효공이 공손앙을 썼다. 공손앙이 변법(變法)을 추진하려 했다.
조정에서 반대가 쏟아졌다.
감룡(甘龍)이 말했다.
“성인은 백성을 바꾸지 않고 가르치며, 지혜로운 자는 법을 바꾸지 않고 다스린다.”
공손앙이 받아쳤다.
“그것은 세속의 말입니다. 세 왕조는 같은 예(禮)가 아니어도 왕이 되었고, 다섯 패자는 같은 법이 아니어도 패자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가 그것에 매입니다.”
두지(杜摯)가 말했다.
“이익이 백 배가 아니면 법을 바꾸지 않는다.”
공손앙이 말했다.
“치세는 하나의 방도가 아닙니다. 나라에 편리하면 옛것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효공이 선언했다. 변법을 시행한다.
나무 하나의 신뢰
법령이 갖춰졌으나 아직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이 믿지 않을 것을 걱정했다.
도성 저잣거리 남문에 세 장(丈) 높이의 나무를 세웠다. 방을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금 열 냥을 주겠다.”
백성이 괴이하게 여겼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다시 방을 붙였다.
“금 쉰 냥을 주겠다.”
한 사람이 옮겼다. 즉시 금 쉰 냥을 주었다.
그제야 법령을 공포했다.
1년이 지나자 백성들이 도성으로 몰려와 새 법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수천 명이었다.
그때 태자가 법을 어겼다.
공손앙이 말했다.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 어기기 때문이다.”
태자는 군주의 후계자라 형을 가할 수 없었다. 대신 태자의 스승 공자건(公子虔)을 처벌하고, 태부 공손가(公孫賈)의 얼굴에 먹을 새겼다.
다음 날부터 진나라 사람 모두가 법을 따랐다.
10년이 지났다.
길에 물건을 떨어뜨려도 줍지 않았다. 산에 도적이 없었다. 집집마다 넉넉했다. 백성은 나라를 위한 전쟁에는 용감했고, 사사로운 싸움은 두려워했다.
처음에 법이 불편하다 했던 자들이 다시 몰려와 이제는 편하다고 했다.
공손앙이 말했다.
“이들도 교화를 어지럽히는 백성이다.”
모두 변경으로 내쫓았다. 그 뒤로 아무도 법령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속임수로 얻은 승리
공손앙은 대량조(大良造)가 되어 군사를 이끌었다.
위나라를 쳐서 안읍(安邑)을 함락했다.
이후 위나라와 다시 맞붙게 됐다. 위나라 장수는 공자앙(公子卬)이었다.
공손앙이 공자앙에게 서신을 보냈다.
“우리는 예전에 친하게 지냈소. 지금 두 나라의 장수가 되어 서로 공격하기 어렵소. 만나서 맹세를 맺고 즐겁게 술을 마신 뒤 군사를 물리고 진나라와 위나라를 편안하게 합시다.”
공자앙이 응했다.
회맹이 끝나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공손앙이 미리 숨겨둔 갑사(甲士)를 풀어 공자앙을 사로잡았다. 그 군대를 공격해 모두 격파했다.
위혜왕이 여러 번 제나라와 진나라에 패해 나라가 텅 비었다. 두려워하며 사신을 보내 하서(河西)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고 화의를 청했다.
위나라는 안읍을 버리고 대량(大梁)으로 수도를 옮겼다.
위혜왕이 탄식했다.
“내가 공숙좌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한이다.”
공손앙은 진나라로 돌아왔다. 효공이 상(商)과 어(於) 15읍을 봉했다. 이때부터 그를 상군(商君)이라 불렀다.
조량의 경고
상군이 진나라 재상이 된 지 10년.
종실 귀족들의 원망이 쌓여갔다.
조량(趙良)이라는 선비가 찾아왔다. 상군이 교분을 청했다. 조량이 거절했다.
상군이 물었다.
“그대는 내가 진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소?”
조량이 말했다.
“저는 그대에게 직언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조목조목 말했다.
백리해(百里奚), 즉 오고대부(五羖大夫)는 진나라 목공의 재상이었다. 그는 수레를 타지 않았고, 더위에 양산을 쓰지 않았다. 나라 안을 다닐 때 거마를 두지 않았다. 그가 죽자 진나라 남녀가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대는 경감이라는 총신을 통해 군주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명성을 쌓는 방법이 아닙니다. 태자의 스승에게 형을 가하고 백성에게 가혹한 형벌을 쓰는 것은 원한을 쌓고 화근을 기르는 것입니다.”
조량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대의 위태로움은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아직도 수명을 늘리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어찌 열다섯 고을을 돌려주고 변방에서 밭을 갈며 숨지 않으십니까? 진나라 왕이 하루아침에 그대를 버린다면, 진나라가 그대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상군이 따르지 않았다.
법이 그를 죽이다
5개월 뒤 효공이 죽었다.
태자가 즉위했다. 오래전 법을 어겼던, 스승이 형벌을 받았던 바로 그 태자였다.
공자건 일파가 상군이 반란을 꾀한다고 고발했다.
관리들이 상군을 잡으러 왔다.
상군이 달아났다. 국경 근처 객사에서 묵으려 했다.
주인이 말했다.
“상군의 법에 의하면 확인할 수 없는 자를 재워주면 연좌됩니다.”
상군이 탄식했다.
“아, 법의 폐해가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위나라로 도망쳤다.
위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공자앙을 속여 위나라 군사를 격파한 것을 원망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가려 했으나 위나라가 말했다.
“상군은 진나라의 죄인이다. 진나라가 강한데 죄인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진나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상군이 자신의 봉지 상읍(商邑)으로 달아나 무리를 이끌고 정(鄭)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가 군사를 보내 상군을 쳤다.
정나라 면지(黽池)에서 죽었다.
진혜왕이 상군의 시신을 거열(車裂)하여 거리에 돌렸다.
“상앙처럼 반란을 꾀하지 말라!”
상군의 일족이 멸족됐다.
시스템을 만든 자는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앙이 객사에서 거절당한 장면이 이 열전의 핵심이다. 자신이 만든 법이 자신을 막았다.
조직에서도 같다. 당신이 만든 규칙, 당신이 세운 기준, 당신이 정한 프로세스는 결국 당신에게도 적용된다.
시스템을 설계할 때는 자신이 그 시스템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상앙의 또 다른 실패는 사람을 잃은 것이다. 조량이 정확히 짚었다. 태자의 스승에게 형을 가하고, 귀족들의 원한을 쌓고, 공자앙을 속여 적국의 증오까지 샀다. 효공이 살아있는 동안엔 권력이 방패가 됐다.
그 방패가 사라지자 사방이 적이었다.
권력은 위에서 내려오지만, 생존은 사방에서 온다. 윗사람의 신임만 믿고 주변의 원한을 쌓는 것은 가장 위험한 생존 전략이다.
상앙의 법은 진나라를 천하통일의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법을 만든 자는 그 법에 밟혀 죽었다. 공(功)은 역사에 남고, 몸은 거열됐다.
성과와 생존은 별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