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오자서
복수라는 이름의 심연 :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사내, 오자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수많은 영웅과 책사들 중, 가장 처절하고 핏빛으로 붉게 빛나는 단 하나의 별을 꼽으라면 단연 ‘오자서(伍子胥)’다.
그의 생애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부당한 권력에 짓밟힌 한 인간이, ‘원독(怨毒·사무친 원한)’을 동력 삼아 스스로 거대한 복수의 화신이 되어 한 국가를 멸망시키고야 마는 장엄한 비극이자 처절한 생존기록이다.
1. 개미의 죽음을 거부하다
기원전 6세기 초나라. 어리석은 평왕과 간신 비무기의 탐욕은 한 명문가를 하루아침에 파멸로 몰아넣었다. 아버지가 옥에 갇혔고, 평왕은 그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두 아들 오상과 오자서를 불렀다. 오면 함께 죽일 것이고, 오지 않으면 아버지를 베겠다는 잔혹한 덫이었다.
여기서 형제의 길은 극명하게 갈린다. 형 오상은 당대의 도덕률인 ‘효(孝)’를 따랐다. 아버지가 부르는데 가지 않는 것은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며 기꺼이 사지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동생 오자서는 달랐다.
“우리가 간다고 아버지가 살 수 있는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통쾌함을 안겨줄 뿐이다. 살아서 타국으로 달아나 힘을 길러 치욕을 씻는 것, 그것이 진짜 복수다. 함께 죽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마천은 훗날 이 선택을 두고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면 땅강아지나 개미(螻蟻)와 무엇이 달랐겠는가.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었다”고 평했다.
세상은 종종 명예로운 희생을 찬미한다. 그러나 오자서는 목적을 잃은 죽음의 무가치함을 직시했다. 그는 죽음이라는 도덕적 면죄부 대신, 살아서 진흙탕을 뒹구는 고통스러운 생존을 택했다. 세계의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서늘한 결단이었다.
2.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목숨을 건진 오자서는 송나라와 정나라를 거쳐 오나라로 스며들었다. 변방의 도망자가 되어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초나라의 수도 ‘영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는 치밀하게 움직였다. 공자 광(光)의 야심을 간파해 자객 전제를 천거하여 그를 오왕 합려로 옹립했다. 이후 손무와 함께 오나라를 최강의 군사 강국으로 빚어냈고,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의 심장부를 짓밟았다. 도망친 지 무려 16년 만에 거둔 승리였다.
그러나 맹렬히 추구했던 복수의 대상, 평왕은 이미 죽어 흙 속에 있었다. 오자서는 망설임 없이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썩어가는 시신을 꺼내어 삼백 번의 채찍질(굴묘편시 掘墓鞭屍)을 가했다. 과거의 친우 신포서가 이 참혹한 광경에 경악하며 천도를 저버린 가혹한 짓이라 비난하자, 오자서는 역사에 남을 한 마디를 뱉어낸다.
“내게는 날이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吾日莫途遠). 그러니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억지로 행할 수밖에 없다(吾故倒行而逆施之).”
이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처절한 선언이다. 삶은 짧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기에, 하늘의 이치나 세상의 도덕마저 부수고 자신의 잣대로 정의를 집행하겠다는 광기. 그는 스스로 짐승이 됨으로써 야만의 시대를 심판했다.
3. 뽑힌 두 눈이 목격한 파국
복수를 완성한 오자서는 오나라의 충신으로 헌신하려 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를 다시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합려의 뒤를 이은 부차는 월왕 구천을 살려두는 치명적인 패착을 둔다. 오자서는 “월나라는 뱃속의 큰 병(腹心之疾)과 같으니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피를 토하며 간언했다. 그러나 교만에 빠진 부차와 뇌물에 눈이 먼 간신 백비는 도리어 오자서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결국 부차는 자신이 왕으로 섬긴 자에게 자결을 명하는 촉루지검(屬鏤之劍)을 내린다. 오자서는 탄식과 함께 섬뜩한 저주를 남겼다.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판재로 쓰게 하라. 그리고 내 두 눈을 뽑아 오나라의 동문에 매달아 두어라. 월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
그가 스스로 목을 긋자, 분노한 부차는 시신을 가죽 자루에 담아 강물에 던졌다. 그러나 오자서의 저주 어린 예언은 9년 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며 완벽한 핏빛 현실로 완성된다.
사색 (Epilogue)
“원독(怨毒)이 사람에게 미치는 해악이 참으로 크고 두렵구나.”
사마천이 열전의 끝에 남긴 이 탄식은 묵직하다. 원한이라는 감정은 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지독한 연료다. 그러나 그 불꽃은 마침내 대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전부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다.
부당한 폭력 앞에서 고고한 죽음을 택하는 대신, 기꺼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진흙탕을 구르며 자신의 몫을 살아낸 오자서. 그 강렬한 생의 의지는 묻고 있다.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 무력하게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내면의 악마를 깨워서라도 기어이 살아남아 궤적을 남길 것인가.
오자서의 삶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서늘한 질문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매달려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