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오자서열전
날이 저물고 길은 멀었다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 복수는 완성됐고, 그것이 그의 파멸이었다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행하고 도리에 어긋나게 했다.
간신의 말 한마디가 집안을 멸했다
오자서(伍子胥), 본명 오원(伍員). 초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였다.
문제는 소부(少傅) 비무기(費無忌)였다. 그는 태자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진나라에서 태자의 신부를 맞이하러 갔다가 신부가 절세미인인 것을 보고 곧장 돌아와 왕에게 고했다. “진나라 여자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왕께서 직접 취하시고 태자에게는 다시 구하시지요.” 초 평왕(平王)이 그 말을 듣고 직접 취했다. 태자의 신부를 빼앗은 것이다.
비무기는 이제 평왕의 총신이 됐다. 그러나 두려웠다. 평왕이 죽고 태자가 왕이 되면 자신을 죽일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움직였다. 날마다 태자를 왕에게 참소했다. “태자가 진나라 여자 일로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스스로 대비하십시오.”
평왕이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오사가 말했다. “왕께서 어찌 간신의 말 때문에 골육지친을 멀리하십니까.” 비무기가 말했다. “지금 제압하지 않으면 일이 이뤄집니다.” 평왕이 노해 오사를 가뒀다. 태자 건은 간신히 알아채고 송나라로 달아났다.
형은 죽으러 가고, 동생은 살아남기로 했다
비무기가 평왕에게 말했다. “오사에게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현명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초나라의 근심이 됩니다.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불러들이십시오.”
왕이 오사에게 전했다. “두 아들을 오게 하면 살려주고, 오지 않으면 죽이겠다.”
오사가 말했다. “맏아들 상(尙)은 어질어서 부르면 올 것이오. 둘째 원(員)은 성격이 굳세고 인내심이 강해 큰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오. 함께 잡힐 것을 알고 오지 않을 것이오.”
형 오상이 가겠다고 했다. 오원이 말했다. “이것은 아버지를 살려주려는 게 아니다. 도망친 자가 나중에 화근이 될까 봐 아버지를 미끼로 우리를 함께 잡으려는 것이다. 가면 부자가 함께 죽을 뿐이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가서 힘을 빌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함께 죽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형이 말했다. “나도 간다고 아버지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기를 바라며 부르는데 가지 않고,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동생에게 말했다. “가거라. 너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다. 나는 돌아가 죽겠다.”
오상이 붙잡혔다. 사자들이 오원을 잡으러 왔다. 오원은 활에 화살을 메겨 사자를 겨눴다. 사자들이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오원은 달아났다.
아버지 오사는 아들 오원이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초나라 군신이 이제 전쟁의 고통을 겪겠구나.” 오상이 초나라에 이르자 초나라는 오사와 오상을 함께 죽였다.
거지가 된 채 오나라를 향해 걷다
오원은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송나라에 내란이 일어났다. 함께 정나라로 달아났다. 정나라 사람들이 잘 대해줬다.
태자 건이 다시 진나라와 내통해 정나라를 안에서 무너뜨리려 했다가 발각됐다. 정나라가 태자 건을 죽였다. 오원은 태자 건의 아들 승(勝)을 데리고 오나라로 달아났다.
소관(昭關)에서 잡힐 뻔했다. 둘이서 걸어 탈출했다. 거의 빠져나오지 못할 뻔했다. 추격자들이 뒤에 있었다.
강에 이르렀다. 강가에 고깃배를 탄 어부 하나가 오원의 다급함을 알아채고 건네줬다. 오원이 강을 건넌 뒤 칼을 풀어 말했다. “이 칼은 백금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드리겠습니다.” 어부가 말했다. “초나라 법에 오원을 잡으면 쌀 오만 석에 집행규(執珪)의 작위를 준다고 하오. 백금짜리 칼이 대수겠소.” 받지 않았다.
오나라에 채 이르기도 전에 병이 났다. 길 한가운데서 멈춰 밥을 빌어먹으며 걸었다. 오나라에 도착했을 때 오왕 료(僚)가 집권 중이었고, 공자 광(光)이 장수였다. 오원은 공자 광을 통해 오왕을 만났다.
때를 기다리며 밭을 갈다
오원은 오왕 료에게 초나라를 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공자 광이 막았다. “저 사람은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에 죽었으니 초나라를 치라는 것은 사사로운 원한 때문이오.”
오원은 공자 광에게 속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것. 지금은 바깥 일로 설득할 때가 아니었다. 오원은 자객 전저(專諸)를 공자 광에게 천거했다. 그리고 자신은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들에서 밭을 갈았다.
기다렸다. 5년이 지났다. 초 평왕이 죽었다. 오왕 료가 초나라의 상중을 틈타 두 공자에게 군대를 주어 초나라를 치게 했다. 초나라가 오나라 군대의 퇴로를 끊었다. 오나라 안이 텅 비었다. 공자 광이 전저를 시켜 오왕 료를 암살하고 스스로 왕이 됐다. 오왕 합려(闔廬)다.
합려가 왕이 되자마자 오원을 불렀다. 나라 일을 함께 도모했다.
초나라 수도에 입성하다
오원과 손무가 합려를 보좌했다. 합려 9년, 드디어 때가 왔다. 초나라 장수 낭와(囊瓦)가 탐욕스럽고, 당나라와 채나라가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당과 채를 끌어들여 함께 초나라를 치면 된다고 했다. 합려가 따랐다.
다섯 번 싸워 마침내 초나라 수도 영(郢)에 이르렀다. 초 소왕(昭王)이 달아났다.
오원은 평왕의 무덤을 파헤쳤다. 시신을 꺼내 삼백 번 채찍질했다. 그리고 멈췄다.
옛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산 속에서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당신의 복수는 너무 심하지 않소. 사람의 무리가 하늘을 이길 수 있다 해도,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도 이길 수 있소. 당신은 평왕의 신하였는데 이제 죽은 자에게 이런 짓을 하니, 이 어찌 하늘의 도리에서 너무 벗어남이 아니겠소?”
오원이 답했다.
吾日暮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행하고 도리에 어긋나게 했다.
신포서는 진나라로 달려가 구원을 청했다. 진나라 조정에 서서 밤낮으로 울었다. 7일 7야,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진 애공(哀公)이 가엾게 여겨 말했다. “초나라가 무도하다 해도 이런 신하가 있으니 그냥 둘 수 있겠는가.” 전차 500승을 보냈다. 오나라 군이 패했다. 때마침 오나라 안에서 합려의 동생 부개(夫槪)가 반란을 일으켰다. 합려가 초나라를 떠나 돌아갔다. 초 소왕이 다시 영으로 돌아왔다.
오원은 복수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간하고 또 간했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합려가 월나라를 쳤다가 부상을 입고 죽었다. 아들 부차(夫差)가 왕이 됐다. 2년 뒤 월나라를 대파했다. 월왕 구천(句踐)이 5천 명의 병사만 남겨 회계산(會稽山)에 갇혔다. 대부 종(種)을 보내 두터운 예물로 태재 백비(伯嚭)를 구워삶고 강화를 청했다.
오원이 간했다. “월왕은 고난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부차는 듣지 않았다. 백비의 계책을 써 월나라와 화평했다.
그 뒤에도 오원은 계속 간했다. 제나라가 아니라 월나라가 진짜 위협이라고. 월나라는 배 속의 병이고 제나라는 돌밭과 같아 이겨도 쓸모없다고.
부차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했다.
내 눈을 뽑아 동문에 걸어라
태재 백비는 월나라의 뇌물을 받고 오원을 날마다 헐뜯었다. “오원은 성격이 강포하고 은혜가 없으며 의심이 많습니다. 왕께서 제나라를 치려 할 때 간해서 막더니, 왕이 이기자 자신의 계책이 쓰이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며 오히려 원망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아들을 제나라 포씨(鮑氏) 집에 맡겨뒀습니다. 신하된 자가 안으로 뜻을 얻지 못하면 밖으로 제후에게 기댑니다. 왕께서 일찍 도모하십시오.”
부차가 말했다. “그대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의심하고 있었소.” 오원에게 속루(屬鏤)의 검을 하사했다. 이것으로 죽으라는 뜻이었다.
오원이 하늘을 향해 탄식했다. “간신 백비가 난을 일으키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주살하는구나. 나는 그대 아버지를 패자로 만들었다. 그대가 아직 왕이 되지 못했을 때 공자들이 다투었는데, 나는 죽음으로써 선왕께 다퉜다. 그대는 이미 왕이 됐는데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어른을 죽이는구나.”
집 사람들에게 말했다.
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爲器。
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以觀越寇之入滅吳也。
내 무덤 위에 반드시 가래나무를 심어라. 그 나무로 관을 짜게 될 것이다.
내 눈을 뽑아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라. 월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겠다.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부차가 크게 노해 오원의 시신을 가죽 자루에 담아 강에 띄웠다. 오나라 사람들이 가엾게 여겨 강가에 사당을 세웠다. 그 산을 서산(胥山)이라 불렀다.
오원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원이 죽고 9년 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부차를 죽이고 태재 백비를 주살했다. 군주에게 불충하고 밖으로 뇌물을 받아 적과 내통한 죄였다.
오원이 눈을 뽑아 동문에 걸어달라 한 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끝을 보고 죽었다.
사마천이 마지막에 썼다. “원한이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심하구나. 왕조차도 신하에게 함부로 행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동렬(同列)의 사람끼리야. 만약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와 함께 죽었다면, 개미와 무엇이 달랐겠는가. 작은 의리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었으니, 이름이 후세에 전해진다. 슬프다. 강가에서 막혀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영(郢)을 잊은 적이 단 한 순간이라도 있었겠는가. 그래서 참고 견디며 공명을 이룬 것이니, 열렬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것을 이루겠는가.”
복수가 목적이 될 때 그 이후는 없다
오자서의 삶은 두 토막이다. 복수를 이루기 전과 이룬 후. 복수 전의 오자서는 놀랍도록 냉철하다. 형이 죽으러 갈 때 함께 가지 않았다. 공자 광의 속마음을 읽고 밭을 갈며 기다렸다. 어떤 굴욕도 견뎌냈다.
그런데 복수를 이룬 뒤의 오자서는 다르다. 평왕의 시신을 삼백 번 채찍질했다. 부차에게 간하고 또 간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았다. 목적이 사라진 자리에 분노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사마천은 이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이 저물고 길이 멀었다”는 오원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훈은 분명하다. 복수나 어떤 절박한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건 사람은, 그것을 이룬 뒤에 무엇을 할지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위험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 이후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도착 직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