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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노자한비열전

용을 본 사람과 용에게 먹힌 사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 도(道)를 말한 자들의 서로 다른 운명


설득의 어려움을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사람이
결국 설득에 실패해 죽었다.

공자가 용을 보다

공자(孔子)가 주나라로 가 노자(老子)를 찾아뵙고 예(禮)에 대해 물었다. 노자의 대답은 짧고 서늘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성인들은 뼈까지 썩어 없어진 지 오래요. 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나아가고,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떠도는 씨앗처럼 흘러가는 법이오. 교만함과 탐욕, 과시하는 태도와 넘치는 의욕, 그것들은 당신에게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해줄 말은 그것뿐이오.”

공자가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鳥,吾知其能飛;魚,吾知其能游;獸,吾知其能走。
至於龍,吾不能知其乘風雲而上天。
吾今日見老子,其猶龍邪!

새는 난다는 것을 안다. 물고기는 헤엄친다는 것을 안다. 짐승은 달린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용은 모른다.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오늘 내가 노자를 만났으니, 그는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공자가 평생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이 한 번뿐이다. 그것만으로 노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된다.

다섯 천 자를 남기고 사라지다

노자는 주나라의 장서실 관리인이었다. 이름은 이이(李耳), 자는 담(聃). 오래도록 주나라에 머물렀지만 나라가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떠나기로 했다.

관문에 이르렀을 때, 관령 윤희(尹喜)가 붙잡았다. “선생께서 숨으시려 하니, 억지로라도 저를 위해 책을 써주십시오.”

노자는 앉아서 상하 두 편을 썼다. 도덕(道德)의 뜻을 담은 오천여 자. 그리고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마천은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기록을 덧붙인다. 노자가 160여 세를 살았다고도 하고, 200여 세를 살았다고도 한다고. 도를 닦아 수명을 기른 까닭이라고. 사마천 자신도 확인하지 못한 이야기를 굳이 적은 것은, 노자라는 존재 자체가 역사 기록의 경계 밖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숨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삼은 사람. 그래서 가장 오래 남은 사람.

제물이 되기 싫었던 장자

장자(莊子)는 송나라 몽(蒙) 땅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다. 작은 고을의 칠원 관리였고, 양 혜왕, 제 선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글은 십여만 자에 달했다. 대부분 우언(寓言), 즉 비유로 쓰인 이야기였다. 유가와 묵가를 날카롭게 해체하고, 노자의 길을 자유롭게 풀어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그의 논변에 쉽사리 반박하지 못했다.

초나라 위왕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냈다. 두둑한 예물과 함께 재상 자리를 제안했다.

장자가 웃으며 사신에게 물었다.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養食之數歲,衣以文繡,以入大廟。
當是之時,雖欲爲孤豚,豈可得乎?

제사에 쓰이는 소를 본 적이 있소? 몇 년을 잘 먹이고 비단 옷을 입혀 종묘에 들어가지요.
그 순간, 아무리 외로운 돼지 새끼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있겠소?

“빨리 돌아가시오. 나를 더럽히지 마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도랑에서 즐겁게 놀겠소. 나라를 가진 자에게 얽매이는 일 없이, 평생 벼슬하지 않고 내 뜻대로 살겠소.”

장자에게 권력은 제사상에 올려지는 것과 같았다. 화려하게 꾸며지는 순간, 이미 죽은 것이다.

한비자, 말 못하는 천재

한비(韓非)는 한나라 공자(公子) 출신이었다. 말을 더듬었다. 입으로는 유창하게 설득하지 못했지만, 붓을 잡으면 달랐다. 같은 스승 순경(荀卿) 아래서 함께 공부한 이사(李斯)조차 스스로 한비만 못하다고 인정했다.

한비는 조국 한나라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며 여러 차례 왕에게 글을 올렸다. 왕은 쓰지 않았다.

그는 분노했다. 유학자들이 글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들이 무력으로 금령을 범한다. 평화로울 때는 명예만 높은 자들을 총애하고, 위급할 때는 갑옷 입은 무사를 쓴다. 평소에 키우는 자와 실제로 쓰는 자가 다르다. 이 나라는 망한다.

그렇게 써낸 것이 고분(孤憤), 오두(五蠹), 설림(說林), 설난(說難), 십여만 자에 달하는 글들이다.

그 중 설난(說難)은 특별하다. 윗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왜 어려운가를 분석한 글인데, 그 치밀함이 섬뜩할 정도다.

설득의 함정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

한비는 설난에서 이렇게 썼다. 설득이 어려운 것은 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말솜씨가 없어서도 아니다. 상대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진짜로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명예를 원하는 자에게 이익을 말하면 천박하게 보인다. 이익을 원하는 자에게 명예를 말하면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명예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이익을 원하는 자에게 명예를 말하면 표면만 취하고 실제로는 멀리한다. 이익을 말하면 겉으로는 버리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쓴다.

군주에게는 역린(逆鱗)이 있다.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군주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으니, 설득하는 자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夫龍之爲蟲也,可擾狎而騎也。然其喉下有逆鱗徑尺,人有嬰之,則必殺人。
人主亦有逆鱗,說之者能無嬰人主之逆鱗,則幾矣。

용은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목 아래 한 자 크기의 역린이 있어, 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설득은 거의 성공한 것이다.

이 분석은 완벽하다. 그리고 한비 자신이 그 역린에 찔려 죽었다.

책이 전쟁을 일으키다

한비의 글이 진나라에 흘러들어갔다. 진왕 정(政), 훗날의 시황제가 고분과 오두를 읽고 탄식했다.

“아, 내가 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이사가 말했다. “이것은 한비가 쓴 책입니다.” 진나라는 즉시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왕은 그제야 한비를 사신으로 보냈다. 쓰지 않던 사람을 위기가 닥치자 꺼낸 것이다.

진왕은 한비를 만나 기뻐했다. 그러나 아직 신임하지는 않았다. 그 틈을 이사와 요가(姚賈)가 파고들었다. “한비는 한나라 공자입니다. 끝내 한나라를 위하고 진나라를 위하지 않을 것입니다. 쓰지 않으실 거라면 돌려보내지 마시고 법으로 처리하십시오.”

진왕이 옳다고 했다. 한비는 옥에 갇혔다. 이사가 사람을 시켜 독약을 보냈다. 한비는 직접 해명하려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왕이 뒤늦게 후회해 사면령을 내렸을 때, 한비는 이미 죽어 있었다.

사마천은 이 장면 앞에서 짧게 썼다. “나는 홀로 한비자가 설난을 쓰고도 스스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슬퍼한다.”

네 사람, 하나의 뿌리

이 열전에는 네 사람이 함께 담겨 있다. 노자, 장자, 신불해(申不害), 한비자. 사마천은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했다.

노자가 귀하게 여긴 도는 텅 비어 있고 고요하여, 변화에 스스로 응한다. 장자는 그것을 흩뿌려 자연으로 돌아갔다. 신불해는 그것을 낮추어 명분과 실질에 적용했다. 한비자는 그것을 끌어당겨 먹줄처럼 날카롭게 세상의 시비를 잘랐다. 냉혹하고 은혜가 적었지만, 모두 도덕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 노자가 가장 깊고 멀다.

같은 뿌리에서 자란 네 그루의 나무다. 노자는 구름 위로 사라졌고, 장자는 도랑에서 헤엄쳤고, 신불해는 한나라를 15년간 평온하게 다스렸고, 한비는 자신이 쓴 논리의 무게에 눌려 죽었다.

도(道)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를 쓰는 자신이 어떤 세계 안에 놓이느냐의 문제였다. 한비의 논리는 완벽했다. 세계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역린을 아는 것과 피하는 것은 다른 기술이다

한비자의 설난은 2천 년 전 텍스트지만, 오늘날 어떤 조직론 책보다 정확하다.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건드리면 안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설득의 핵심이라는 것. 이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비 자신은 그 지식을 자신의 생존에 적용하지 못했다. 아는 것과 그 상황 안에서 살아남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직장에서 가장 날카롭게 조직을 분석하는 사람이 정작 조직 안에서 가장 빨리 소외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자의 방식을 다시 보라. 때가 맞지 않으면 흘러가라. 적이 분명해지면, 말을 멈추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설득이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그 용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