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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맹상군열전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3,000명을 먹인 자의 고독

“부귀하면 선비가 모이고, 빈천하면 친구가 적어지는 것,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풍환(馮驩)


오월 초닷새에 태어난 아이

전문(田文)은 천한 첩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오월 초닷새 생이었다.

그 시절 이 날에 태어난 아이는 키가 문설주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는 속설이 있었다. 아버지 전영(田嬰)은 어미에게 명했다.

“아이를 키우지 마라.”

어머니는 몰래 아이를 살렸다.

아이가 자라 아버지 앞에 섰다. 전영이 분노했다. 버리라 했는데 살렸으니.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께서 오월생을 키우지 않으려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키가 문설주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시 물었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서 받습니까, 아니면 문설주에서 받습니까?”

전영이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말했다.

“하늘에서 받는다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문설주에서 받는다면 문설주를 높이면 그만입니다. 누가 거기까지 자랄 수 있겠습니까.”

전영은 침묵했다.

이 아이가 훗날 맹상군(孟嘗君) 전문이 된다.


아버지를 설득한 아들

버림받을 뻔한 아이는 자라면서 조용히 기회를 기다렸다.

어느 날 전문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의 아들은 무엇입니까?” “손자입니다.” “손자의 손자는?” “현손입니다.” “현손의 손자는?” “모르겠다.”

전문이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세 왕을 섬기며 재상으로 제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동안 제나라 영토는 넓어지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사재는 만금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문하에 단 한 명의 현인도 보이지 않습니다. 장군 집안에는 반드시 장군이 나오고, 재상 집안에는 반드시 재상이 나온다 했습니다. 지금 후궁은 비단을 밟고 다니는데 선비들은 짧은 베옷도 없습니다. 하인들은 남은 고기를 버리는데 선비들은 쌀겨조차 배부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재산을 쌓아 언제 올지 모를 후손에게 물려주려 하면서, 나라의 일은 날마다 무너지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전영은 그제야 아들을 봤다.

집안의 빈객 접대를 전문에게 맡겼다.

빈객이 날마다 늘었다. 이름이 제후들 사이에 알려졌다. 제후들이 사신을 보내 전문을 태자로 삼아달라 청했다. 전영이 허락했다.

전영이 죽자 전문이 자리를 이었다.

이것이 맹상군의 시작이었다.


3,000명의 식객

맹상군이 설(薛) 땅에 자리를 잡자 천하의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죄를 짓고 도망친 자도 받아들였다. 제후국의 망명객도 받아들였다. 가리지 않았다. 귀하든 천하든 모두 맹상군 자신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식객이 수천 명이었다.

맹상군은 손님과 이야기할 때 병풍 뒤에 기록자를 세워두었다. 손님의 말을 받아 적고, 가족의 거처까지 파악했다. 손님이 떠나면 이미 사람을 보내 그 친척을 위로하고 선물을 전했다.

어느 날 밤, 손님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불빛을 가렸다. 옆에 앉은 손님이 밥의 내용이 다를 것이라 여겨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

맹상군이 직접 일어났다.

자신의 밥그릇을 들고 그 손님 앞에 가져다 보였다. 똑같은 밥이었다.

손님은 부끄러움에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을 베었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맹상군의 집에는 못 들어올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구나 자신이 특별히 여겨진다고 느꼈다.


개도둑과 닭 울음소리

제나라 민왕(湣王) 25년, 맹상군이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초청을 받았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 수레 인형과 흙 인형의 우화를 들어 설득하는 자도 있었다. “진나라는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입니다.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겠습니까.”

맹상군은 처음엔 멈췄다. 그러다 결국 갔다.

소왕은 처음엔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신하가 속삭였다.

“맹상군은 현명하지만 제나라 왕족입니다. 진나라 재상이 된다면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는 나중에 생각할 것입니다.”

소왕이 마음을 바꿨다. 맹상군을 가뒀다. 죽이려 했다.

맹상군은 소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을 통해 풀려나려 했다. 그 여인이 말했다.

“저는 호백구(狐白裘)가 갖고 싶습니다.”

호백구. 여우 겨드랑이 흰 털만 모아 만든 가죽옷. 값이 천금이었다. 천하에 하나뿐인 것을 맹상군은 이미 소왕에게 바쳤다. 두 번째 호백구는 없었다.

맹상군이 식객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방법이 없었다.

가장 아래 자리에 앉은 자가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개처럼 기어 진나라 궁궐 창고에 잠입했다. 이미 바친 호백구를 꺼내왔다.

여인이 소왕에게 말했다. 소왕이 맹상군을 풀어줬다.

맹상군은 즉각 달아났다. 이름을 바꾸고 통행증을 위조해 함곡관(函谷關)으로 달렸다.

한밤중이었다.

함곡관의 법은 닭이 울어야 성문을 열었다. 새벽이 아직 멀었다. 추격대가 오고 있었다. 그때 또 가장 아래 자리에 앉은 자가 나섰다.

그는 닭 울음소리를 냈다.

근처의 닭들이 따라 울었다. 성문이 열렸다. 맹상군이 빠져나왔다.

한 식경(食頃)쯤 뒤, 진나라 추격대가 관문에 도착했다. 이미 늦었다.


사람을 보는 눈

이 두 사람, 개도둑과 닭 울음의 사내.

처음 맹상군의 식객으로 들어왔을 때 다른 손님들이 모두 부끄러워했다. 그런 재주를 가진 자들과 같은 밥상에 앉아야 하느냐고.

맹상군은 개의치 않았다.

진나라에서 포위됐을 때 그들이 맹상군을 살렸다.

그 이후로 식객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사마천이 이 장면을 기록한 것은 단순히 기이한 에피소드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의 쓸모는 예측할 수 없다. 천한 재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천금의 가치가 된다. 맹상군이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것은 방탕한 취미가 아니라 전략이었다.


풍환(馮驩), 칼을 두드리던 사내

맹상군의 수많은 식객 중 가장 특별한 이름은 풍환이다.

처음 그가 찾아왔을 때 행색이 초라했다. 신발도 제대로 없었다. 맹상군이 물었다.

“선생은 무엇을 잘하십니까?”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웃으며 받아들였다.

가장 낮은 등급의 숙소에 머물렀다. 며칠 뒤 그는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긴 칼이여 돌아가세, 먹을 때 생선이 없구나.”

맹상군이 듣고 그를 더 좋은 숙소로 올렸다. 생선이 나왔다.

며칠 뒤 또 칼을 두드렸다.

“긴 칼이여 돌아가세, 나갈 때 수레가 없구나.”

맹상군이 또 올렸다. 수레가 생겼다.

며칠 뒤 또 노래했다.

“긴 칼이여 돌아가세, 집안을 꾸릴 것이 없구나.”

맹상군이 불쾌해했다.

그러나 이 불평쟁이 풍환이 훗날 맹상군의 가장 결정적인 조력자가 된다.


채권을 불태운 밤

맹상군은 설 땅에 봉해진 만호(萬戶)의 영주였다.

그러나 식객 3,000명을 먹이기에는 수입이 부족했다. 설 땅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충당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 이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빚을 받아오라 했다.

풍환이 설 땅에 도착했다. 채무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소와 술을 잔뜩 준비했다. 잔치를 열었다. 갚을 수 있는 자와는 기한을 정하고, 갚을 수 없는 자의 채권은 모두 꺼내 불태웠다.

사람들이 일어나 두 번 절했다.

맹상군이 이 소식을 들었다. 분노해서 풍환을 불렀다.

“왜 그랬소?”

풍환이 말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자의 채권은 십 년이 지나도 이자만 불어납니다. 그들은 결국 도망칩니다. 이자가 많아질수록 군주는 백성을 쥐어짜는 사람이 되고, 백성은 주군을 버리는 자가 됩니다. 쓸모없는 빚을 태우고 받을 수 없는 허수를 지웠습니다. 설 땅 백성들이 군주를 친하게 여기고 군주의 좋은 이름이 드러날 것인데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맹상군이 손뼉을 치며 사과했다.

풍환은 채권을 태워 민심을 샀다. 그것이 훗날 맹상군이 쫓겨났을 때의 도피처가 됐다.


세 개의 토굴

후날 제나라 민왕이 맹상군을 폐했다.

3,000명의 식객이 하루아침에 모두 떠났다.

풍환만 남았다.

그는 홀로 진나라로 갔다. 진왕에게 말했다.

“천하의 유세객 중 동쪽으로 제나라에 가는 자들은 모두 제나라를 강하게 하려는 자들이고, 서쪽으로 진나라에 가는 자들은 진나라를 강하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는 암수를 다투는 나라입니다. 둘이 동시에 강할 수는 없습니다.”

진왕이 몸을 세우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진나라가 수컷이 될 수 있겠소?”

풍환이 말했다.

“제나라가 맹상군을 폐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반드시 제나라를 원망합니다. 지금 맹상군을 모셔오면 제나라의 내정이 모두 진나라에 넘어옵니다. 수레 열 대와 황금 백 일(鎰)을 보내 먼저 모셔오십시오.”

진왕이 크게 기뻐했다.

풍환은 진나라 사신보다 먼저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왕에게 말했다.

“진나라가 수레 열 대에 황금 백 일을 실어 맹상군을 초빙하려 합니다. 맹상군이 서쪽으로 가면 천하의 중심이 진나라로 옮겨갑니다. 지금 진나라 사신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맹상군을 복직시키고 봉지를 더해 사과하십시오. 맹상군이 받으면 진나라 사신은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제왕이 “좋다”고 했다.

국경에 사람을 보내 진나라 사신의 동향을 살피게 했다. 진나라 수레가 국경에 들어서자마자 즉각 맹상군을 불러 재상직을 돌려주고 봉지에 천 호를 더 얹었다. 진나라 사신은 돌아갔다.

이것이 풍환의 ‘세 개의 토굴’ 전략이었다.

교토삼굴(狡兔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

맹상군에게 첫 번째 굴은 설 땅의 민심, 두 번째 굴은 진나라의 위협, 세 번째 굴은 제나라로의 복귀였다.


부귀하면 모이고, 빈천하면 떠난다

맹상군이 복직해 돌아오는 길.

풍환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맹상군이 탄식했다.

“나는 평생 손님을 좋아해 한 번도 홀대한 적이 없었소. 3,000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렸소. 그런데 내가 한번 자리를 잃자 모두 등을 돌리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소. 이제 다시 자리를 얻었다 해도, 다시 찾아오는 자들이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을 주겠소.”

풍환이 수레를 멈추고 내려 절했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렸다.

“선생께서 저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오?”

풍환이 말했다.

“아니오. 군주의 말이 잘못됐기에 내려온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부귀하면 선비가 모이고, 빈천하면 친구가 적어지는 것, 이것이 세상의 고정된 이치입니다. 군주는 아침 시장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새벽이면 어깨를 비비며 문 안으로 들어가지만, 해가 지면 장터를 지나는 자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바라던 것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군주께서 자리를 잃었는데 손님들이 떠난 것을 원망해서 다시는 선비의 길을 끊으려 하십니까. 부디 예전처럼 손님을 대하십시오.”

맹상군이 두 번 절했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사마천이 설 땅을 지나며

사마천은 이 열전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썼다.

“내가 일찍이 설 땅을 지나갔는데, 그 고을 백성들의 풍속이 거칠고 사나운 자제들이 많아 추(騶)·노(魯)와는 전혀 달랐다. 그 이유를 물으니,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과 불량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에 들어온 자가 6만여 가구나 됐다’고 했다.”

3,000명의 식객. 그 안에는 개도둑도 있었고, 닭 울음을 흉내 내는 자도 있었으며, 불평쟁이도 있었다.

맹상군은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을의 풍속은 수백 년이 지나도 거칠게 남아 있었다.

사마천은 비판하려 한 것인가, 칭찬하려 한 것인가.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명성은 헛되지 않다. 그러나 명성의 대가도 반드시 어딘가에 남는다.


조직에서 맹상군을 읽다

사람을 쓸 때 지금의 쓸모가 아니라 언젠가의 쓸모를 봐야 한다.

개도둑과 닭 울음의 사내는 평상시에 조직의 수치였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조직은 예측 가능한 재능만 채용하려 한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위기는 예측 불가능한 재능이 해결한다.

풍환의 채권 소각은 단기 손실과 장기 신뢰의 교환이었다. 갚지 못할 사람에게 빚을 계속 추심하면 돈도 못 받고 원한만 산다. 차라리 포기하고 민심을 얻는 것이 더 큰 자산이 된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받을 수 없는 것을 계속 요구하는 것은 비용이다.

부귀할 때 모인 사람들이 빈천할 때 떠난다. 풍환의 말처럼 이것은 세상의 이치다. 그것을 배신이라 분노하며 문을 닫으면 다음의 기회가 없다. 맹상군이 풍환의 말을 듣고 다시 문을 열었기 때문에 재기할 수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것은 거기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원망보다 먼저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