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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맹자순경열전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쓸모없는 자들의 위대함

“이익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다.” — 사마천, 맹자의 책을 덮으며


사마천이 책을 덮은 순간

사마천은 고백했다.

맹자의 책을 읽다가 양혜왕(梁惠王)이 묻는 대목에 이르면, 매번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양혜왕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소?”

왕이 나라를 걱정하는 당연한 질문처럼 들린다. 그러나 맹자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맞섰다.

“왕은 왜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사마천은 이 장면에서 멈췄다. 그리고 썼다.

“이익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다.”

천자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탐하는 폐해가 어찌 다르겠느냐고.

이것이 열전의 서두다. 사마천은 인물의 생애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탄식을 기록했다. 그만큼 이 열전의 인물들은 단순한 역사 속 이름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대와 불화한 자들이었다.


맹자, 환영받지 못한 자

맹가(孟軻). 추(騶) 땅 사람.

공자의 손제자 자사(子思)의 문하에서 배웠다. 학문이 무르익자 세상에 나섰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섬겼다. 선왕은 그를 쓰지 않았다.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갔다. 혜왕은 그의 말이 너무 멀고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여겼다.

사마천은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 시절, 진(秦)나라는 상앙(商鞅)을 써서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초(楚)와 위(魏)는 오기(吳起)를 써서 전쟁에서 이겼다. 제나라는 손자(孫子)와 전기(田忌)를 써서 제후들이 동쪽을 향해 조아렸다.

천하가 합종연횡(合從連衡)에 골몰하고 공벌(攻伐)을 능사로 여기던 시대.

그 한복판에서 맹자는 요순(堯舜)의 덕과 삼대(三代)의 왕도를 이야기했다.

어느 왕도 그를 쓰지 않았다.

맹자는 돌아왔다.

제자 만장(萬章) 등과 함께 시서(詩書)를 정리하고 공자의 뜻을 서술했다. 그것이 맹자(孟子) 7편이다.

쓸모없다고 버려진 자가, 역사에서 가장 오래 읽히는 책을 남겼다.


추연(騶衍), 가장 환대받은 자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산 추연(騶衍)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띤다.

그는 음양(陰陽)의 소장(消長)을 깊이 탐구했다. 오덕(五德)의 이동이 역사의 흥망을 설명한다는 이론을 세웠다. 중국이 천하의 전부가 아니라 81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밖에 다시 아홉 개의 신주(神州)가 있고, 그 바깥을 큰 바다가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황당하게 들린다. 사마천도 그 언어가 “크고 황당하며 상도(常道)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제후들은 그를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양(梁) 혜왕은 교외까지 나와 빈주(賓主)의 예를 갖춰 맞이했다.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그의 곁에서 걸으며 자리를 정돈했다. 연(燕)나라 소왕(昭王)은 친히 비를 들고 앞길을 쓸며 안내했고, 갈석궁(碣石宮)을 지어 직접 제자의 자리에 앉아 가르침을 받았다.

사마천은 이 장면을 맹자와 나란히 놓았다.

“공자가 진(陳)·채(蔡)에서 먹을 것이 없어 낯빛이 누렇게 떴고, 맹자가 제·양에서 곤경을 겪은 것과 어찌 같겠는가!”

무엇이 달랐는가.

추연은 왕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했다. 맹자는 왕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했다.

환대의 크기는 진실의 크기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순우곤(淳於髡), 침묵으로 왕을 읽다

이 열전에는 희한한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순우곤(淳於髡). 박학다식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제나라 사람.

그는 양 혜왕을 두 번 만났다. 두 번 모두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혜왕이 이상하게 여겨 그를 소개한 손님에게 따졌다.

“당신이 순우 선생은 관중(管仲)이나 안영(晏嬰)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내가 얻은 것이 없소. 어찌 된 것이오?”

손님이 순우곤에게 전했다.

순우곤이 말했다.

“당연한 일이오. 내가 처음 왕을 만났을 때 왕의 마음은 말 달리기에 가 있었소.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음악에 가 있었소. 그래서 내가 침묵했소.”

손님이 왕에게 전했다. 왕이 크게 놀랐다.

“맞소! 처음 왔을 때 누군가 좋은 말을 바쳐서 아직 보지 못했는데 마침 선생이 왔소. 두 번째 왔을 때는 노래하는 자가 있었는데 아직 시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선생이 왔소. 내가 사람들을 물리치긴 했지만 마음은 그쪽에 있었소.”

이후 순우곤은 왕과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혜왕이 경상(卿相)의 자리로 예우하려 했다. 순우곤은 사양하고 떠났다.

안거(安車)에 사필(駟筆)을 매고, 비단 묶음에 벽옥을 얹고, 황금 백일(百鎰)을 예물로 받았다. 그리고 평생 벼슬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상대인지를 먼저 확인했다.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으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순우곤의 방식이었다.


직하(稷下)의 학자들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의 직문(稷門) 아래, 직하학궁(稷下學宮)이 있었다.

이곳은 전국시대 최대의 지식 집결지였다. 제나라 왕이 학자들에게 높은 집과 넓은 문, 대부(大夫)의 자리를 주며 천하의 인재를 불러들였다.

추연(騶衍), 순우곤(淳於髡), 신도(愼到), 전병(田駢), 접자(接子), 환연(環淵), 추석(騶奭).

이들이 모두 이곳에서 글을 쓰고 논쟁하며 세상의 치란(治亂)을 논했다.

신도는 조(趙)나라 사람으로 황로(黃老) 도덕의 학문을 닦아 논 12편을 남겼다. 환연은 초(楚) 사람으로 상하(上下) 두 편을 썼다. 전병과 접자도 각각 논고를 남겼다. 추석은 추연의 학문을 이어 문장으로 기록했다.

이 중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평가는 이러했다.

“하늘을 논하는 추연(談天衍), 용을 조각하는 추석(雕龍奭), 바퀴통을 지나치는 순우곤(炙轂過髡).”

추연은 우주의 스케일로 말했다. 추석은 문장이 화려했다. 순우곤은 어디서든 막히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귀착점은 달랐다.

사마천은 썼다. 추연의 학문이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그 결론은 반드시 인의절검(仁義節儉)과 군신 상하 육친(六親)의 도리로 귀결됐다고. 왕공대인들이 처음에는 두려워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끝내 실행하지는 못했다고.

화려한 환대. 무거운 예우. 그러나 실행은 없었다.


순자(荀子), 가장 냉철했던 자

이 열전의 마지막 큰 인물은 순경(荀卿)이다.

조(趙)나라 사람. 나이 쉰이 되어서야 제나라에 와 학문을 논했다.

그는 직하학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스승이 됐다. 세 차례 제주(祭酒, 최고 좌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모함했다. 순자는 제나라를 떠나 초(楚)나라로 갔다. 춘신군(春申君)이 그를 난릉령(蘭陵令)으로 삼았다. 춘신군이 죽자 순자도 자리를 잃었다. 그는 난릉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곳에 묻혔다.

그의 제자 중 이사(李斯)가 있었다. 훗날 진나라의 재상이 됐다.

또 다른 제자 한비(韓非)가 있었다. 법가의 집대성자가 됐다.

순자는 혼탁한 세상의 정치를 깊이 미워했다.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어지러운 것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큰 도(大道)를 따르지 않고 무당과 점쟁이에 의존하며 길흉의 징조를 믿는 세태를 탄식했다. 또 유가의 소견머리 좁은 자들을 비판했고, 장자(莊周) 같은 이들이 세속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봤다.

그는 유가, 묵가, 도가의 행적과 흥망을 정리하고 수만 언을 저술하고 죽었다.

혼탁한 세상 앞에서 학문으로 맞선 자였다.


쓸모없는 자들이 남긴 것

이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대부분 환대받았지만 쓰이지 않았다. 혹은 쓰였지만 끝까지 가지 못했다. 맹자는 제후들에게 외면받았고, 추연은 환호를 받았지만 그 학문이 실행되지 않았으며, 순우곤은 자리를 스스로 사양했고, 순자는 모함을 받아 쫓겨났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것은 다르다.

맹자는 인의의 언어를 남겼다. 추연은 우주적 상상력을 남겼다. 순우곤은 상대를 읽는 눈을 남겼다. 순자는 혼탁한 세상을 직시하는 냉철함을 남겼다.

그리고 사마천은 이들을 한 열전에 묶었다.

왜인가.

그들은 모두 이익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른 언어를 말한 자들이었다. 왕들은 이익을 원했다. 이 사람들은 그보다 다른 것을 말했다.

그래서 쓸모없었다. 그래서 남았다.


사마천의 마지막 탄식

사마천은 이 열전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맹자의 책을 읽다가 양혜왕의 질문에 이르면, 매번 책을 덮고 탄식한다고.

같은 탄식을 열전의 서두와 결미에 배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익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다. 공자가 이익을 드물게 말한 것은 늘 그 근원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익을 좇아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 천자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탐하는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사마천이 이 열전을 쓴 것은 단순한 인물 기록이 아니었다.

이익의 시대에 살면서도 이익 이외의 것을 말한 자들에 대한 헌사였다.

그리고 그 헌사는, 이익만을 추구하다 무너진 수많은 왕과 나라들의 이야기들 사이에 조용히 끼워져 있다.


조직에서 이 열전을 읽다

환대와 채용은 다르다.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조직과, 좋은 말을 실행하는 조직은 다르다.

추연은 제후들에게 최고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학문은 실행되지 않았다. 현대 조직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다. 컨설턴트를 부르고, 강연자를 초청하고, 보고서를 받는다. 그리고 실행하지 않는다. 환대는 실행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맹자의 이야기는 더 서늘하다. 이익을 먼저 묻는 조직에서 가치를 먼저 말하는 사람은 “너무 멀고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평가가 틀린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옳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순우곤의 침묵은 지금도 유효한 전술이다. 상대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말해봤자 들리지 않는다. 준비된 상대에게만 말을 꺼내는 것, 그것이 설득의 기본이다.

이익을 말하는 자는 언제나 환영받는다. 가치를 말하는 자는 종종 쫓겨난다. 그러나 역사에 남는 것은 후자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