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erwinder

사기열전, 중니제자열전

자공(子貢) 열전: 말 한마디로 다섯 나라를 뒤흔든 사나이

“자공이 한 번 나서자, 노나라를 보존하고,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월나라를 패자로 만들었다. 자공 한 사람의 사행(使行)이 열 해 사이에 다섯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다.” 사마천, 사기(史記)


공자의 그릇

그의 이름은 단목사(端木賜), 자(字)는 자공(子貢).

위(衛)나라 출신이다. 공자보다 서른한 살 어렸다.

그는 말이 빨랐다. 혀가 칼처럼 날카로웠고, 논리는 흐르는 물처럼 막힘이 없었다. 공자는 그 변설을 자주 경계했다. 너무 영리한 제자는 때로 스승도 불편하게 만드는 법이다.

하루는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떤 그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호련(瑚璉)이다.”

호련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옥으로 만든 귀한 그릇이다. 공자가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했으면서도, 자공에게는 특별한 그릇의 이름을 붙였다. 칭찬이면서 동시에 경계였다.

자공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를 안회(顔回)와 비교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압니다.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겸손한 말이었지만, 자공은 알고 있었다. 안회는 가난 속에서 도를 즐겼고, 자신은 세상을 움직이는 데 쓰일 사람이라는 것을.


스승의 조국이 위태롭다

기원전 484년, 제(齊)나라의 권신 전상(田常)이 야심을 드러냈다.

그는 제나라 내부의 귀족들, 즉 고씨·국씨·포씨·안씨의 세력을 두려워했다. 그 힘을 꺾으려면 전쟁이 필요했다. 전쟁의 상대는 노(魯)나라였다.

공자가 소식을 들었다. 노나라는 그의 고국이었다. 부모의 나라였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땅이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노나라가 이런 위기에 처했는데, 너희는 왜 나서지 않느냐?”

자로(子路)가 먼저 나섰다. 공자가 막았다.

자장(子張)과 자석(子石)이 청했다. 공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이 청했다.

공자가 허락했다.

말 한마디로 제후를 움직이고, 정세의 흐름을 읽어 이익을 설계하는 일. 그것은 자공의 일이었다.


제나라를 뒤집다

자공이 제나라로 갔다. 전상을 만났다.

그는 정면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노나라를 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전상이 의아하게 여기자, 자공이 말을 이었다.

“노나라는 성벽이 낮고, 땅이 좁고, 임금은 어리석고, 대신들은 쓸모없습니다. 이런 나라를 이겨봐야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차라리 오(吳)나라를 치십시오. 오나라는 성벽이 높고, 병사는 정예이고, 장수는 유능합니다.”

전상이 발끈했다.

“당신은 어려운 것을 쉽다 하고, 쉬운 것을 어렵다고 하니 무슨 의도요?”

자공이 웃지 않고 말했다.

“저는 당신의 속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걱정이 안에 있으면 강한 적을 쳐야 한다. 전상의 진짜 적은 노나라가 아니었다. 제나라 안의 귀족들이었다. 노나라를 이기면 군주만 강해질 뿐, 전상 자신의 입지는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오나라를 쳐서 지면, 경쟁자인 귀족들의 병력이 소모된다. 이기면 오나라를 굴복시킨 명성으로 군주를 압도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전상에게 유리했다.

전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나라 왕의 야심을 건드리다

자공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를 만났다.

부차는 패업(霸業)에 굶주려 있었다. 자공은 그 허기를 찔렀다.

“노나라를 구하고 제나라를 치십시오. 이는 이름으로는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의로운 일이고, 실질적으로는 강한 제나라를 꺾는 이득입니다.”

부차의 눈이 빛났다. 그러나 곧 주저했다.

“내가 전에 월(越)나라와 싸워 그들을 회계산(會稽山)에 가뒀소. 월왕 구천(句踐)이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데, 먼저 월나라를 쳐야 하지 않겠소?”

자공이 막았다.

“월나라를 치는 동안 제나라는 노나라를 평정할 것입니다. 그것이 용맹입니까?”

그리고 덧붙였다.

“제가 월나라에 가서 그들이 군사를 내어 오나라를 돕게 하겠습니다.”

부차는 결정했다. 자공을 월나라로 보내라.


구천의 심장을 꿰뚫다

월나라 왕 구천이 직접 교외까지 나와 자공을 맞이했다.

그는 무릎을 굽히며 물었다.

“이 변방의 땅에 대부께서 어찌 오셨습니까?”

자공이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오왕이 당신을 치려 합니다.”

구천의 얼굴이 굳었다.

자공이 계속했다.

“세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복수할 마음이 없으면서 의심받는 것. 복수할 마음이 있는데 들키는 것. 일이 터지기 전에 소문이 나는 것. 지금 당신은 세 가지 위험 중 어디에 있습니까?”

구천이 이마를 조아렸다.

“저는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나라와 싸웠습니다. 회계에서 패하여 치욕을 당했습니다.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고, 오직 부차와 함께 죽기를 바라왔습니다.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자공이 처방을 내렸다.

“오왕에게 군사를 보내 돕겠다고 하십시오. 그를 제나라와 싸우게 만드십시오.”

오나라가 제나라를 이기면, 반드시 그 여세를 몰아 진(晉)나라로 향할 것이다. 그때 월나라가 배후에서 치면 된다. 오나라가 지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구천이 탄식했다. 그리고 수락했다.

구천은 금 백 일(鎰)과 명검 하나, 좋은 창 두 자루를 선물로 내밀었다.

자공은 받지 않았다.


오직 말로 판을 짜다

자공은 다시 오나라로 돌아갔다.

부차에게 보고했다.

“월왕이 크게 두려워하며 군사를 내어 돕겠다 했습니다.”

부차가 기뻐하며 물었다.

“월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따르겠다 하는데, 어떻소?”

자공이 고개를 저었다.

“나라를 비우고, 백성을 다 동원하고, 임금까지 따르게 하는 것은 의롭지 않습니다. 군사만 받고 왕은 거절하십시오.”

부차는 그렇게 했다. 월나라의 군사 3천 명만 받고, 구천 본인은 돌려보냈다.

그런 다음 자공은 북쪽으로 말을 달렸다. 진(晉)나라로 갔다.

진나라 임금을 만나 말했다.

“오나라가 제나라를 이기면 반드시 진나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미리 군사를 정비하십시오.”

진나라 임금이 놀라며 그러겠다고 했다.

자공은 노나라로 돌아갔다.


열 해가 지나 판이 뒤집히다

그 뒤의 역사는 자공의 설계도대로 움직였다.

오나라 부차는 제나라와 애릉(艾陵)에서 싸워 대승을 거뒀다. 일곱 장수의 병력을 사로잡았다. 그는 흥분했다. 귀국하지 않고 곧장 군사를 북으로 돌려 진나라로 향했다.

황지(黃池)에서 오나라와 진나라가 맞섰다. 어느 쪽이 패자(霸者)냐를 두고 힘을 겨뤘다.

진나라가 이겼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월나라 구천이 움직였다.

오나라 도성에서 7리 밖에 진을 쳤다. 부차는 급보를 받고 진나라에서 철수해 돌아왔다. 이미 늦었다. 오호(五湖)에서 세 번 싸워 세 번 다 졌다. 성문을 지키지 못했다.

월나라가 왕궁을 포위했다.

부차는 죽었다. 재상도 처형됐다.

오나라가 무너진 뒤 3년, 구천은 천하의 패자가 됐다.


한 사람이 남긴 것

사마천은 이 장면을 단 한 줄로 압축했다.

“자공이 한 번 나서자, 노나라를 보존하고,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월나라를 패자로 만들었다. 자공 한 번의 사행으로 열 해 사이에 다섯 나라가 각각 변했다.”

자공은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전쟁터에 나서지 않았다. 검 한 자루 쓰지 않았다.

오직 말로 했다.

그는 각각의 군주와 권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욕망의 방향을 자기가 설계한 판 위에 올려놓았을 뿐이다.

전상은 내부의 적을 제거하고 싶었다. 부차는 패업의 이름을 원했다. 구천은 복수를 원했다. 진나라는 안전을 원했다.

자공은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다. 단지 그 순서와 방향을 조율했을 뿐이다.


자공은 그 뒤에도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집에 천금을 쌓았다.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하기 좋아했고, 남의 잘못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은 제나라에서 눈을 감았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는 안회였다. 그러나 세상을 가장 크게 움직인 제자는 자공이었다.


스승은 왜 제자를 골랐는가

공자는 까다롭지 않았다.

귀족도 받았고, 천민도 받았다. 못생긴 자도 받았고, 말썽꾼도 받았다. 유일한 조건은 속수(束脩), 포 한 묶음의 예물이었다. 그것만 가져오면 누구든 문을 열었다.

그 문으로 들어온 사람이 3천 명이었다.

그 중 이름이 남은 자가 77인.

사마천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열전에 담았다. 영웅도 있고, 겁쟁이도 있다. 천재도 있고, 게으름뱅이도 있다. 충신도 있고, 반역자도 있다.

공자의 제자들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장 사랑받은 자: 안회(顔回)

공자에게 가장 사랑받은 제자는 안회였다.

스물아홉에 머리가 모두 셌다. 가난했다. 밥 한 그릇,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골목에서 살았다. 남들은 그 처지를 견디지 못했다.

안회는 즐거워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질도다, 안회여!”

그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았다. 화를 엉뚱한 곳에 풀지 않았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가장 배움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안회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배움을 좋아하여 화를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안회는 스물아홉에 백발이 되고, 일찍 죽었다.

공자가 통곡했다. 문인들이 “너무 슬퍼하십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했다.

“이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슬퍼하겠느냐.”


가장 거칠었던 자: 자로(子路)

자로는 처음에 제자가 아니었다.

성격이 거칠고 용맹을 좋아했다. 수탉 깃털로 만든 관을 쓰고, 수퇘지 가죽으로 만든 장식을 차고 다녔다. 그리고 공자를 찾아가 능멸했다.

공자는 화내지 않았다. 예(禮)로 천천히 그를 끌어들였다.

자로는 결국 유복(儒服)을 입고 제자가 되었다.

변한 것 같았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듣는 것이 있으면 즉시 행동하려 했다. 아직 앞의 것을 실행하지 못했는데 또 들을까봐 두려워했다.

공자가 말했다.

“자로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예언은 맞았다.

위(衛)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났다. 자로가 섬기던 주군의 집안이 반란에 휘말렸다. 성문이 닫혔다. 먼저 빠져나온 자고(子羔)가 자로를 말렸다.

“이미 끝났습니다. 돌아가십시오. 괜히 화를 당하지 마십시오.”

자로가 말했다.

“그의 녹을 먹은 자는 그의 위난을 피하지 않는다.”

자로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싸움이 벌어졌다. 자로의 갓끈이 끊어졌다.

자로가 말했다.

“군자는 죽어도 관을 벗지 않는다.”

그는 갓끈을 고쳐 매면서 죽었다.

공자가 위나라의 난을 듣고 말했다.

“아, 자로가 죽었구나.”

과연 그랬다.


도를 즐긴 자와 도를 외면한 자: 원헌(原憲)과 자공의 재회

자공이 재상이 되어 화려한 수레를 타고 위나라를 지날 때였다.

풀숲 속 초라한 골목에서 원헌이 나왔다. 해진 옷, 꿰맨 신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자공이 물었다.

“선생께서 병이 드셨습니까?”

원헌이 답했다.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합니다.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닙니다.”

자공이 부끄러워하며 떠났다.

평생 그 말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다. 한 사람은 천금을 모았고, 한 사람은 풀숲에 숨었다. 누가 옳은지 사마천은 판단하지 않는다.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잠만 잔 자, 반역한 자: 재여(宰予)

재여는 말이 유창했다.

그러나 낮에 잠을 잤다.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

재여는 또 물었다. 삼년상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일 년이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공자가 물었다.

“네 마음이 편하냐?”

“편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 군자는 상중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다. 그래서 하지 않는 것이다.”

재여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여는 어질지 않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재여는 임치(臨菑)의 대부가 되었고, 전상의 반란에 가담했다. 일족이 멸족되었다. 공자가 부끄러워했다.

말만 번지르르했던 자의 끝이었다.


못생겼으나 가장 멀리 간 자: 자우(子羽)

담대멸명(澹台滅明), 자는 자우.

외모가 매우 추했다. 공자를 섬기고 싶었다. 공자는 재능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받아들였다.

자우는 가르침을 받은 뒤 물러나 홀로 수행했다. 지름길로 다니지 않았다. 공적인 일이 아니면 대부를 만나지 않았다.

강남으로 유학을 떠났다.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었다.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퍼졌다.

공자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나는 말로 사람을 취하다가 재여에게서 실수했고, 외모로 사람을 취하다가 자우에게서 실수했다.”

공자도 틀렸다. 위대한 스승도 첫눈에 사람을 다 알지는 못한다.


자격지심 없이 배운 자: 염옹(冉雍)

염옹의 아버지는 천민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말했다.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바르다면, 산천의 신이 어찌 제물로 쓰길 거부하겠느냐.”

태생이 낮다고 그릇이 작지 않다. 염옹은 덕행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공자는 그를 남면(南面), 즉 임금의 자리에 앉힐 수 있는 인물이라 했다.


물러설 줄 알았던 자: 민손(閔損)

민손의 효성은 유명했다.

부모와 형제가 그를 칭찬하면, 아무도 그 말에 딴지를 걸 수 없었다. 그만큼 실제로 그랬다는 뜻이다.

그는 대부의 가신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부정한 군주의 녹을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계씨(季氏)가 그를 불렀다. 민손이 거절하며 말했다.

“만약 다시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 북쪽에 있을 것이다.”

떠나겠다는 말이었다.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지름길을 거부한 자: 자천(子賤)

자천은 단보(單父)의 읍재가 되었다.

공자에게 복명하며 말했다.

“이 고을에 저보다 현명한 분이 다섯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가르쳐 다스리게 했습니다.”

공자가 탄식했다.

“아깝도다. 다스리는 땅이 작구나. 더 큰 땅을 다스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배워 다스리는 것. 이것이 진짜 지도자의 자세라고 공자는 보았다.


질문으로 스승을 성장시킨 자: 자하(子夏)

자하는 시(詩)를 알았다.

시경의 한 구절을 물었다. “흰 바탕에 채색을 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어야 한다.”

자하가 받아쳤다.

“그렇다면 예(禮)도 나중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상(商, 자하의 이름)아, 이제 너와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공자는 자하의 질문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제자가 스승을 깨우친 순간이었다.

자하는 공자 사후 서하(西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위나라 문후의 스승이 되었다. 아들이 죽자 너무 슬퍼하다 눈이 멀었다.


현실을 직시한 자: 자장(子張)

자장은 관직을 원했다.

숨기지 않았다. 공자에게 녹을 얻는 법을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은 빼고,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하면 후회가 적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은 그 안에 있다.

자장은 그 말을 허리띠에 적었다.


게으름과 천재 사이: 증삼(曾參)

증삼은 공자보다 마흔여섯 살 어렸다.

공자는 그에게 효도의 도를 전수했다. 증삼은 효경(孝經)을 지었다. 노나라에서 죽었다.

기록은 짧다.

그러나 이 짧은 기록의 무게는 크다. 공자의 핵심 사상이 증삼을 통해 후세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공자도 실수한 제자: 공야장(公冶長)

공야장은 감옥에 갔다.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공자가 말했다.

“공야장은 아내를 맞이할 만하다. 비록 포승에 묶인 처지였으나 그것은 그의 죄가 아니었다.”

공자는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감옥을 간 자에게 딸을 준 스승. 공자는 세간의 시선보다 사람 자체를 보았다.


말을 아낀 자들: 칠조개(漆雕開)와 계차(季次)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을 권했다.

칠조개가 답했다.

“저는 아직 그것에 대해 스스로 확신이 없습니다.”

공자가 기뻐했다.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깊은 자기 인식이었다.

공석애(公皙哀), 자는 계차. 그는 세상이 어지럽고 가신(家臣)으로 사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에도 끝끝내 벼슬하지 않았다. 공자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칭찬이었다.


스승을 고자질한 자: 공백료(公伯繚)

공백료는 자로를 계손씨에게 참소했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이 공자에게 알렸다.

“공백료를 제가 처형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는 것도 운명이고, 도가 폐해지는 것도 운명이다. 공백료가 운명을 어찌하겠느냐.”

분노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에 남겼다. 사마천이 그것을 다시 기록했다.

고자질한 자는 영원히 기록된다.


말이 많아 화를 부른 자: 사마경(司馬耕)

사마경은 말이 많고 조급했다.

인(仁)을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어진 자는 말을 아낀다.”

사마경이 다시 물었다.

“말을 아끼면 그것이 인입니까?”

“행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는데, 어찌 말을 아끼지 않겠느냐.”

말 많은 자에게 말 아끼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눈 먼 스승 흉내: 유약(有若)

공자가 죽은 뒤, 제자들이 그리워했다.

유약이 공자와 외모가 닮았다. 제자들이 모여 유약을 스승처럼 섬기기로 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물었다. 공자가 예전에 이러이러한 일을 어떻게 알았냐고.

유약이 대답하지 못했다.

제자들이 말했다.

“유약, 비켜라. 그 자리는 당신의 자리가 아니다.”

외모를 닮은 것과 내면을 닮은 것은 다르다. 유약은 그 차이를 끝내 메우지 못했다.


사마천이 남긴 말

태사공이 말했다.

학자들 중에 공자의 70제자를 칭송하는 자가 많다. 칭찬하는 자는 실제보다 과장하고, 비방하는 자는 실제보다 깎아내린다.

아무도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논어에 나오는 제자들의 이름과 기록에 가장 가깝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사마천은 판단을 유보했다. 그는 기록했을 뿐이다.


설득은 내 논리가 아니라 상대의 욕망으로 한다

자공의 외교술은 단순하다. 상대가 이미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 방향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틀어라.

전상에게 “노나라를 치지 마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전상이 진짜로 원하는 것, 즉 내부 경쟁자 제거를 먼저 읽었다.

직장에서도 같다. 상사를 설득하려면 내 논리를 앞세우지 마라. 상사가 이번 분기에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라.

나의 제안이 상대의 목표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일 때, 설득은 이미 끝난 것이다.

자공은 구천에게 가서도 협박하지 않았다. 위기를 알려주고, 스스로 결론 내리게 했다. 사람은 자기가 결정했다고 느낄 때 움직인다.

말이 많은 것이 강점이 아니다. 상대의 욕망을 정확히 읽는 것이 진짜 말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