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erwinder

사기열전, 관안열전

나를 가장 잘 알던 사람의 이름

관안열전(管晏列傳) · 관중과 포숙아, 그리고 안영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

포숙아가 먼저다

관중(管仲)은 춘추시대 최고의 재상이다. 제나라를 천하 최강으로 만들었고, 제 환공(桓公)으로 하여금 춘추 첫 번째 패자(覇者)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성인에 버금가는 경세가로 불렀고, 공자조차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랑캐의 옷깃을 여미고 살았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사마천은 관중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관중을 먼저 꺼내지 않는다. 포숙아(鮑叔牙)를 먼저 꺼낸다.

이유가 있다. 관중이 없었다면 제 환공이 없었을 것이고, 포숙아가 없었다면 관중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열전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처음부터 포숙아였는지도 모른다.

적을 천거하다

두 사람은 젊어서부터 친구였다. 포숙아는 공자 소백(小白)을 섬겼고, 관중은 공자 규(糾)를 섬겼다. 같은 나라에서 서로 다른 주군을 모신 것이다.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소백이 이겼다. 훗날 제 환공이 되는 그 소백이다. 공자 규는 죽었고, 관중은 포로가 됐다. 적국의 패잔병 신세였다.

이 순간 포숙아가 움직였다.

그는 막 천하의 패자로 올라서려는 주군 환공에게 간청했다. 관중을 재상으로 쓰라고. 자신의 경쟁자였던 사람을, 포로 신세였던 사람을,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히라고 했다.

환공은 처음에 거부했다. 관중은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쏜 적이 있었다. 죽일 원수였다. 포숙아가 말했다. “패업을 이루려면 관중이 필요합니다. 저로는 부족합니다.”

환공이 받아들였다. 관중은 재상이 됐다.

관중이 고백한 것들

훗날 관중은 포숙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담담하게, 그러나 하나도 빠짐없이.

젊어서 함께 장사를 했을 때, 이익을 나누면서 자신이 더 많이 챙겼다. 포숙아는 탐욕스럽다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포숙아를 위해 일을 도모했다가 오히려 더 궁색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포숙아는 어리석다 하지 않았다. 때가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벼슬을 했다가 세 번 쫓겨났다. 포숙아는 못났다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時運)을 만나지 못했을 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세 번 달아났다. 포숙아는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여 죽을 때, 나는 죽지 않고 포로가 됐다. 포숙아는 부끄러움이 없다 하지 않았다. 작은 절개에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천하에 공명을 세우는 것이 더 중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生我者,父母;知我者,鮑叔也。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

이 고백 앞에서 설명이 필요 없다. 사람이 평생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한 문장이 다 말해준다.

관중의 정치, 그 실용의 감각

관중은 재상이 된 뒤 제나라를 빠르게 바꿔놓았다. 작은 해변 나라였던 제나라를 무역과 부로 키웠고, 군사를 강하게 했다.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있다.

倉廩實而知禮節,衣食足而知榮辱。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염치를 안다.

이상론이 아니었다. 관중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따랐고, 싫어하는 것을 없앴다. 명령이 강물의 원류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고 했다. 힘으로 누르는 정치가 아니라, 흐름을 읽는 정치였다.

그는 재상이면서도 공실에 버금가는 부를 누렸다. 세 곳의 저택과 사치스러운 기물을 가졌다. 그런데 제나라 사람들은 사치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나라를 그보다 훨씬 더 부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 안영

관중이 죽고 백여 년이 흘렀다. 제나라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안영(晏嬰), 자는 평중(平仲).

그는 영공, 장공, 경공, 세 임금을 섬겼다. 키가 여섯 자도 안 됐다. 재상이 됐어도 밥상에 고기를 두 가지 올리지 않았고, 첩에게 비단을 입히지 않았다. 검소함이 사치가 아니라 원칙이었다.

임금이 말을 걸면 직언했고, 말을 걸지 않을 때도 곧은 행동으로 말을 대신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명을 따랐고, 도가 없을 때는 원칙에 따라 명을 가늠했다. 세 임금 곁에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수레꾼의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

안영의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을 엿봤다.

남편은 재상의 수레를 몰며 커다란 포장 아래 네 필 말을 다루고 있었다. 의기양양하고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 아내가 말했다. “저는 집을 나가겠습니다.”

남편이 이유를 물었다.

“안영 나리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되는데, 제나라 재상으로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날립니다. 오늘 보니 그분의 태도는 깊고 조용했고, 항상 자신을 낮추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신은 키가 여덟 자나 되면서 남의 수레나 모는 처지입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만족하고 있으니, 그래서 떠나려는 겁니다.”

그 뒤로 수레꾼은 달라졌다. 스스로를 낮추고 조심했다. 안영이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묻자, 수레꾼이 사실대로 말했다. 안영은 그를 천거해 대부로 삼았다.

작은 일화다. 그러나 이 이야기 안에 안영이라는 사람의 크기가 담겨 있다. 자신을 낮추는 재상을 알아본 아내, 그 말을 받아들인 수레꾼, 변화를 알아채고 기회를 준 재상. 사람을 보는 눈과 사람을 쓰는 법이 한 장면에 들어 있다.

사마천의 고백

사마천은 이 열전의 끝에서 드문 말을 남겼다.

假令晏子而在,余雖爲之執鞭,所忻慕焉。
만약 안영이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기꺼이 채찍을 잡겠다.

역사가가 역사 속 인물에게 이런 말을 남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수레꾼이 되어도 좋다는 것. 사마천은 안영에게서 자신이 흠모하는 어떤 것을 봤다. 권세 앞에 굽히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잃지 않은 사람.

그리고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도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천하를 움직인 것은 관중의 재능이었지만, 그 재능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포숙아가 먼저 그것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세상은 재능을 칭송하지만, 사마천은 재능을 알아본 눈을 더 높이 쳤다. 관안열전의 첫 문장이 관중이 아니라 포숙아로 시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내 경력을 만든다

관중이 위대한 재상이 된 것은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포숙아가 그 실력을 먼저 알아봤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못한 관중이 수없이 많다. 포숙아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직장에서 자신을 낮추고 묵묵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안영의 수레꾼은 오랫동안 스스로 만족하며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아내의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그는 평생 수레꾼으로 끝났을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첫째, 당신 주변에 포숙아가 있는가. 실패해도, 도망쳐도, 여러 번 쫓겨나도 끝까지 당신의 맥락을 이해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있다면 잃지 마라. 둘째, 당신은 누군가의 포숙아가 되고 있는가.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재능 그 자체만큼 희귀하고, 그만큼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