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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백이와 숙제

“하늘의 도는 편애가 없어, 언제나 선인의 편이다.”
과연 그러한가.

사마천이 이 편을 먼저 쓴 이유

사기(史記) 열전은 70편이다. 그 첫머리에 사마천은 항우도 한신도 소진도 아닌, 이름조차 흐릿한 두 형제를 세웠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이들은 천하를 통일한 것도, 전략으로 제후를 굴복시킨 것도 아니다. 그들이 한 일은 단 하나. 끝까지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굶어 죽었다.

사마천은 이 이야기를 쓰면서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을 당했다는 것을. 이 편은 고대의 기록이 아니다. 사마천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선한 삶은 보상받는가. 절개를 지키면 하늘이 알아주는가.

왕위를 두 번 거절한 형제

고죽국(孤竹國)의 군주에게 아들이 셋 있었다. 아버지는 셋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아버지가 죽었다.

숙제는 거절했다. 맏형인 백이가 있는데 자신이 어찌 왕위에 오르겠냐고. 백이에게 양보했다.

백이도 거절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숙제가 받아야 한다고.

왕위가 둘 사이에서 떠돌았다. 결국 둘 다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 국인(國人)은 할 수 없이 둘째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이 대목에서 잠깐 멈춰야 한다. 형제 모두 권력을 원하지 않은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권력을 올바른 방식으로만 받고 싶었다. 그 방식이 맞지 않으면 차라리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말머리를 잡고 간언하다

나라를 떠난 두 형제는 서쪽으로 향했다. 서백(西伯) 희창(姬昌), 훗날 문왕(文王)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여생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서백은 이미 죽어 있었다.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목패(木主)를 수레에 싣고 동쪽으로 진격 중이었다. 목표는 은나라 주왕(紂王) 타도.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머리를 붙잡고 외쳤다.

父死不葬,爰及干戈,可謂孝乎?
以臣弑君,可謂仁乎?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에 나서니 효라 할 수 있는가?
신하로서 군주를 치니 인(仁)이라 할 수 있는가?

무왕의 측근들이 칼을 뽑으려 했다. 태공망(太公望) 여상이 말렸다. “의인(義人)들이오.” 부축해서 내보냈다.

죽을 수 있었다. 알면서도 말했다. 그리고 살아서 내쫓겼다.

수양산에서 굶어 죽다

무왕은 주왕을 꺾었다. 천하는 주나라 것이 됐다. 제후와 민심이 모두 주를 따랐다.

백이와 숙제는 수치스럽게 여겼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꾼 것이라 판단했다. 주나라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었다. 굶주림이 극에 달했다. 죽기 전 노래를 남겼다.

登彼西山兮,采其薇矣。
以暴易暴兮,不知其非矣。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노라.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면서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는구나.

그리고 굶어 죽었다.

사마천은 여기서 딱 한 마디를 보탠다. “이것을 보건대, 그들은 원망한 것인가, 원망하지 않은 것인가?”

공자는 “인을 구해서 인을 얻었으니 무슨 원망이 있겠냐”고 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그 말을 옮기면서도 믿지 않는 눈빛이다. 노래의 마지막 구절, ‘명지쇠의(命之衰矣)’. 운명이 쇠하였구나. 그것이 원망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하늘은 공정한가

여기서부터 백이열전의 진짜 무게가 시작된다. 사마천은 고대의 성현 이야기를 쓰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배움을 좋아했다는 안연(顔淵). 공자가 유독 그를 아꼈다. 그런데 안연은 끼니를 잇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반면 도척(盜蹠). 매일 무고한 자를 죽이고 사람의 간을 먹으며, 수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천하를 횡행했다. 그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사마천이 묻는다.

餘甚惑焉,儻所謂天道,是邪非邪?

나는 몹시 의혹스럽다.
이른바 하늘의 도란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 문장 하나가 백이열전의 심장이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이런 질문은 거의 불경에 가깝다. 하늘이 선인을 돕는다는 것이 유교의 근간인데, 사마천은 그 명제를 정면으로 의심한다.

그는 홀로 궁형을 당하면서 이 질문과 씨름했을 것이다. 나는 옳은 말을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가. 이릉(李陵)을 변호한 것이 죄였는가. 그렇다면 하늘의 도는 어디 있는가.

이름이 남으려면

그렇게 울부짖고 난 뒤, 사마천은 한 가지 냉혹한 결론을 내린다.

백이와 숙제가 이름을 남긴 것은 그들의 절개 때문만이 아니다. 공자가 그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안연의 배움이 빛난 것도 공자의 수레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 바위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이 아무리 절조를 지켜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으면 이름은 묻힌다.

閭巷之人,欲砥行立名者,非附靑雲之士,惡能施於後世哉?

골목 속 평범한 사람이 행실을 닦고 이름을 세우려 해도,
청운(靑雲)의 사람에 기대지 않고서야 어찌 후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사마천의 마지막 문장이다. 찬사가 아니다. 선언이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기록은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사마천은 썼다. 하늘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공정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사기(史記)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당하게 굶어 죽은 두 형제의 이름이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불리는 것은, 한 인간이 치욕을 견디며 붓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개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백이와 숙제는 옳았다. 그리고 굶어 죽었다. 옳은 것과 살아남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직장에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많다. 그 원칙이 기록되고 평가받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의 성실과 절조를 알아주는 ‘공자’가 없다면, 그것은 수양산에서 혼자 고사리를 캐는 것과 같다.

사마천의 냉혹한 충고는 이것이다.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의 행실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청운지사(靑雲之士)와의 연결이 없으면 이름은 묻힌다.

그렇다고 아첨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자리와 사람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숨어서 선한 것은 결국 없었던 것이 된다. 하늘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움직여야 한다.